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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인터뷰 - 류승완

분류
조합원 인터뷰
인터뷰 일시
2017/12/07
인터뷰 장소
초등학교 때 재미삼아 찍던 사진이 생업이 되다 - 류승완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매월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조합원 인터뷰를 싣습니다.
2016년 5월호에는 류승완 조합원을 인터뷰 했습니다. (이하 홍=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류=류승완)
홍 :기본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주활동이 뭔가?
류 :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다.
홍 : 홍우주 행사 있을 때마다 사진 찍어 주는 모습을 봤는데 조합원으로 뭔가 기여를 하겠다고 생각한 건가?
류 : 의식을 하고 사진을 찍는 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어서.
홍 : 지금까지 찍은 사진이 엄청 쌓여 있을텐데 체계적으로 아카이빙을 하나?
류 : 한숨이 나온다. 카메라가 한 대여서 폴더를 만들고 촬영 때마다 메모리를 카피하고 지우면 섞이지는 않는다. 다만 폴더가 숫자로만 이름이 붙어 있어서 나중에 사진을 못 찾는다.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홍 : 아카이빙은 영원히 못하는 거 아닌가? 미뤄둔 숙제처럼 늘 생각날 거 같은데?
류 : 그렇다. 늘 고민만 하다가 인공지능이 어떻게 해결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글포토는 얼굴인식이 되니까 사람 검색이 일부 가능하다. 브로셔 모아 놓은 것도 엄청나다. 스캔을 뜨면 ocr기능으로 검색이 가능할 수도 있다. 세미나도 많이 다녔다. 홍우주 1차 총회도 갔었는데 그 때 촬영한 영상도 가지고 있다. 맥북에 문서앱을 열면 받아적기란 기능이 있다. 음성을 글자로 바꾼 다음에 태그를 걸면 음성파일도 검색이 된다. 아무튼 AI가 해결해주겠지 하면서 쌓아두고 있다.
홍 : 사진을 그렇게 오래 찍었으면 필름 사진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관하나?
류 : 필름인 채로 있다. 초등학교 때 손으로 필름을 감아 돌리는 첫 35mm 카메라를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 삼성 AF슬림 35mm 카메라가 생겼다. 대학 때부턴 공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밝은 렌즈가 필요해서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사려고 했는데 당시 DSLR은 천만원이 넘어서 미놀타 SLR 카메라에 니콘 필름스캐너를 물려서 사용했다. 공대 졸업한 후 회사 다니면서 알바처럼 사진을 찍다가 2012년도부터 사진가로 전업했다. 1999년 대학 졸업하고 SLR 카메라 사용한 이후부터 알바를 했으니까 대략 사진 경력이 20년 다 되어 가는 듯하다.
홍 : 초등학교 때부터 사진을 찍었다고 할 만큼 의식적으로 찍고 다닌 건가?
류 :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까 재밌어서 계속 찍었다.
홍 : 그 때는 주로 뭘 찍었나?
류 :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를 주로 찍었고 인물은 안 찍었다. 사람 찍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공연은 그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기록해두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홍 : 초등학교 때 이미 사진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거네?
류 : 그냥 필름이 아까웠다. 36방짜리 찍으면 끝이고 새 필름을 사려면 돈이 들어 가니까 의미 없는 건 찍기 싫었다. 기록으로 남길만한가 생각하면서 셔터를 눌렀다.
홍 : 직접 인화도 했나? (안했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도 보관 되어 있겠네? (그렇다) 그거  가끔이라도 꺼내 보나?
류 : 너무 많아서 안 보고 박스에 보관 중이다. 디지털 아카이빙 하려면 뜯어서 일괄적으로 해야겠지.
홍 : 사진 자체는 시간 지나면 색이 바래는데 필름은 어떤가?
류 : 보정이 된다. 2차세계대전 때 미국 국회도서관 자료사진인가 그런데 당시 사진도 지금 디카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디카 사진과 대비되는 말로 바랜 느낌과 그래인이 있는 사진을 필름사진 같다고 표현 하지만 필름이 근본적으로 바래거나 자글자글한 느낌의 소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 : 기술적으로는 엄청 발전했구나.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 모아서 전시 하고 싶은 생각 안 드나?
류 : 공연사진이 많아서 초상권부터 시작해서 이것 저것 걸린다. 그런데 디지털액자를 만들어서 싹 넣어두고 미디어아트 작업 같은 걸 해보고 싶긴 하다.
홍 :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사진에 대한 철학은?
류 : 일단 돈을 받아야 찍는다.(일동 웃음) 이런 걸 찍어야 돈이 된다가 아니라 돈 주면 찍는다. 그거 빼면 페북에 올리는 음식 사진이 거의 전부다. 그런 철학은 있다. 사진가마다 스타일이나 색감 같은 게 있는데 난 그런 것 없이 RAW로 찍고 포토샵에서 중성적인 색을 입히고 어둡든 밝든 깨지지 않게 데이타를 구겨 넣어서 최대한 후보정 하기 편한 데이타를 만들어 디자이너에게 넘긴다. 여기까지가 포토그래퍼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의 보정은 사용 용도에 맞게 해당 디자이너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홍 : 실용주의 마인드인 듯하다.
류 : 그렇다.
홍 : 사진예술이라고 생각하나? 일이라고 생각하나?
류 : 아직 스스로 작가라고 칭하기는 낯간지럽다. 사진가라고 소개 못하고 그냥 돈 받고 찍는다고 소개한다. 개인전은 안 해봤고 단체전 했었는데 전부 미디어아트였지 사진전시회는 아니었다.
홍 : 주로 어디서 일을 받나?
류 : 주로 잡지사. 가끔 의류 피팅모델 촬영도 들어온다.
홍 : 그 쪽도 대부분 단기 계약인가?
류 : 잡지회사에 소속된 하우스 포토그래퍼도 있지만 나는 보통 건당으로 받고 시간으로 나누면 대략 10만원 정도 될 것 같다.
홍 : 페이는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류 :  시급의 문제는 아니고 건수가 문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기계 제작도 하고.
홍 : 사진과 관계된 작업만으로 기본 생계는 되나?
류 : 일단은 올해는 될 거 같다. (웃음)
예술다방을 찾던 매니아가 서교 운영단이 되다
홍 : 주제를 돌려보자. 홍우주 조합원인데 홍대 문화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류 :  서교예술실험센터(이하 서교)가 09년쯤 개관한 뒤로 1층 다방을 자주 이용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커피 맛도 여기서 배웠다. 원래 망원동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전학을 갔고 대학 때 지금 사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동네랑은 연이 별로 없었다. 07년도에 홍대와 신촌 사이에 있는 클럽에서 애니메이션 음악 카피공연에 우연히 입장료 5000원을 내고 본 것이 태어나서 처음 인디밴드의 공연을 본 것이다. 사실 인디밴드라기 보다는 취미밴드에 가까웠는데 아무튼 엄청 잘 했었다. 그렇게 라이브 공연을 처음 봤다. 공연 보면서 촬영을 하고 결과물을 주는 과정에서 친해졌고 다른 서브컬쳐계 그룹과 관계를 가지면서 메탈음악 하는 분들의 사진도 찍게 되었다. 홍대랑 연관을 맺게된 계기다. 그러다 서교 운영이 민관거버넌스로 바뀌었고 재오픈 파티에도 참여 했었다. 폐관 위기가 지나가는 것도 지켜봤다. 그리고 그 이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응하는 모임이 만들어졌을 때 오랫 동안 이용해 온 곳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합류하게 되었다가 재작년엔 홍대문화연구네트워크에서, 작년부터는 운영단에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홍 : 운영단이 주로 하는 일은?
류 : 청소까지 하는 건 아니지만 거의 모든 일을 결정한다. 매니저 포함 운영단 7명이 매주 한 번씩 회의를 한다. 자문단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정을 한다. 생각보다 자유도가 높아서 회의참가는 주 1회 정도지만 실제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여 회의를 통해 활동비 인상도 결정했다.
홍 : 올해 소액다컴 공모에 아주 많은 사람이 기획서를 냈다고 들었다.
류 : 110명 정도가 지원을 했다. 증빙을 안 해도 되고 지원액수도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었다. 그래서 지원도 늘어난 것 같다. 최초예술지원은 말도 못한다. 300건도 더 들어왔더라.
홍 : 110팀 정도 지원했다는데 다 기획서 다 못 읽어봤을 거 같다. 다 읽어봤다면 재밌는 질문이 많을텐데.
류 : 작년에도 심사를 했었기 때문에 그냥 물어봐도 된다.
홍 : 통계적으로 어떤 분야가 가장 많나?
류 : 서울문화재단에서 하다보니 음악쪽도 있지만 미술쪽이 훨씬 많다. 자격요건은 없는데 홍대앞에서 재밌는 걸 해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어디에 홍보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미술쪽이 좀 많은 것 같다.
홍 : 점수를 매긴다고 했는데 방식은 어떻게 되나?
류 : 작년에는 15팀 뽑았다. 지원서 오면 심사위원이 각자 뽑고 싶은 팀을 복수로 선발한다.  각자 뽑아 올린 팀이 한 표를 받는 거다. 요번에는 심사과정이 많이 까다로워졌다. 3배수 선발이었다가 1.5배수 선발로 서류비중이 커지면서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서류 통과하면 당첨 가능성 높기 때문에 채점이 까다로워졌다. 점수로 순위를 매기고 취합해서 최고점, 최하점을 빼고 평균내서 선발하는 방식이다. 심사위원이 아는 팀이 나와도 뺀다.
홍 : 채점기준은 심사하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나? 아니면 각자 기준대로 심사하나?
류 : 큰 틀에서 지역성이 있어야 하고 지역문화생태계에 기여해야 한다(공공성)는 합의는 있다.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심사위원 각자 개성 반영해서 심사한다. 흥미로워하는 분야가 다르다.
홍 : 심사위원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그러나?
류 : 서류가 선발이 되고 나면 PT로 2차 선발을 하는데 운영단 7명과 지원자 12명이 같이 심사해서 다득표로 가기 때문에 매우 투명하고 심사 당일날 결과도 현장에서 바로 나온다.
홍 : 소액다컴에서 생산물이 만들어지면 전시하거나 소비하는 건 어떻게 이루어지나?
류 : 제안하기 나름이다. 매일 4컷 만화를 만들어서 자취하는 사람들 방문에 붙이겠다는 지원서도 있었다. 카메라 들고 다니며 맵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비엔날레에 참가를 했었던 어느 작가는 작품 운송료를 빼니 실질적으로 남는 돈이 없어 먹고 살기 힘드니 그냥 생활비를 지원해달라고 했는데 동료평가 방식으로 진행되는 심사 pt에서 두루 공감을 얻어 선정이 되기도 했다.
홍 : 재단, 지자체, 기업 등 지원사업이 매우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지원이 많아도 문화예술생태계가 쉽게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류 : 정부 지원사업은 애매하다. 정부에서는 지원을 해주면 결과를 바로 보고 싶어한다. 이런 형태로는 의미가 없다. 한국은 내수가 망했다. 예를 들어 보자. 내수가 죽고 돈이 없으니까 그림이 안 팔린다. 창업지원을 해줄께가 아니라 복지를 향상시켜서 먹고 살게 해주면 미술품도 살 것이다. 창업지원이라는 게 수익을 내기 위한 창업이 아니라 창업 자체를 위한 창업만 만들어낸다. 예술가 공모사업도 팔리는 예술활동이 아니라 지원을 받기 위한 예술활동이 되면서 시장이 왜곡된다. 전반적으로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굶어 죽을 걱정이 없으면 새로운 시도는 저절로 나온다. 어떤 경우에도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사람은 뭐라도 한다. 정부에서 콕 찍어서 원하는 결과를 정해놓고 지원해주는 것으로는 안 된다. 다양한 시도 속에서 시장에서 살아남을 때 경쟁력이 생긴다. 관료가 의도를 정해 놓고 결과물을 요구하면 대부분 새로운 게 나오지 않는다.
홍 : 이해가 간다. 지원사업을 하나 따고 작품이 끝나면 다시 지원을 하는 악순환이다. 그러다 보면 심사기준에 맞는 것만 하게 되어 있다. 자기 작업을 하려는 건지, 지원을 받기 위한 건지 스스로 모순에 빠진다. 심사에서 떨어지면 도태된다. 이 싸이클을 없애야 한다. 차라리 예술가들에게 보편적 복지를 하라는 이야기 같은데?
류 : 창업지원을 하는데 신기한 물건을 들고 나갔다 치자. 심사위원들은 자기들이 잘 모르니까 안 뽑는다. 어느 정도 익숙해야 뽑는다. 작년에는 카시오에서 15년 전에 나왔던 걸 들고 가서 1억 5천 지원을 받는 경우도 봤다. 국가에서 R&D사업에도 돈을 많이 쓴다. 그런데 이게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야 하니까 이미 성공한 사례들만 가져와서 베낀다. 이러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부는 창업지원을 할 게 아니라 보편복지를 늘려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다 실패해도 최소한 죽지 않고 살 수는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어 있다.
홍 : 한국은 그게 안 되니까 처절한 거 같다. 경제적으로도 수출주도형 국가경제는 끝난 거 같고 내수를 강화하려면 기업들이 노동자 몫을 내놓아야 하는데 저항한다. 전반적으로 문제가 안 풀린다.
류 : 한국이 세금이 적은 건 아니지만 대기업의 법인세를 더 올려야 한다. 정부도 복지를 제외한 분야의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본다. 가계부채가 1000조를 넘었는데 기업유보금은 그와 육박할 정도로 많아졌다. 인건비를 아꼈다는 이야기다. 과거 따라잡기 정책이 유효하던 시절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상황은 지났다고 본다.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야 하는데 공무원은 성과를 내야하면 성과가 나올수 있는 것만 지원을 하게 된다. 이래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가 없고 일을 하기 위해 의미 없는 일을 계속 만들게 된다.
홍 : 서교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운영이 되었나?
류 : 서울문화재단에서 직영으로 관리하다가 박원순 시장 당선 이후 민간이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홍 : 보통은 홍대에서 활동하면서 어느 정도 유명해지고 그러면서 대표성이 생기고 그러는건데 서교라는 공간 애호가였다가 운영위원까지 된 독특한 케이스 같다.
류 : 그렇다. 현재는 활동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작년 이후로 연임으로 운영단에 참여하고 있다. 각 운영단 개인이 각자 인디뮤지션의 미발표곡 음원을 소개한다거나 서교 사업을 아카이빙 한다. 또 블로깅 공간주들을 찾아가 인터뷰 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찾아가는 라운드 테이블, 서브컬쳐계와 연관된 홍대의 문화를 소개하는 덕업일치 모임과 포럼 등 각자 본인의 포지션에 맞으면서도 서교의 본래 목적인 홍대 문화예술생태계 활성화와도 연관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홍우주는 홍대앞 문화예술인들의 대변자
홍 : 조합원들을 만나보면 홍우주 역할에 대해 생각이 다양한 거 같다. 홍우주가 해야할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류 : 박원순 시장이 흩어져서 데모만 하지 말고 공통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을 만들라고 해서 모인 게 홍우주다. 1년 여의 시간을 들여 만들어졌고 조합원도 대부분 단체 대표들이다. 시작할 때 목적이 있었으니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조합원으로 들어와 있는 대표분들도 홍우주가 공식채널이라는 걸 인정하고 홍우주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홍대앞에 존재하는 여러 단체 중 하나가 아니다. 서울시장 요구로 만들어진 공식채널이라는  역사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고민이다.
홍 :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적 협동조합이 됐고 상황이 계속 바뀌었다. 대표성을 갖고 문화예술인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한다는 조합원도 있고 협동조합이니까 자체 비지니스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조합원도 있고 조합원 복지에 신경쓰자는 조합원도 있다. 욕구자체가 다양해졌다.
류 : 애초에 세금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그러면 정책파트너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흐름이 모호해졌다. 나는 만들어진 과정을 아니까 공식적인 대표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홍우주가 여러 단체 중 하나인데 특별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관이랑 직접 연결되어 정책적으로 문화예술인의 목소리를 내는 기능이  중심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그만한 권한을 줘야 한다. 조합원 중에 대표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힘만 잘 모아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홍 : 다양한 목소리를 적절히 모아내고 다시 역할을 재분배할 필요가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인정투쟁이 필요하다면 한 목소리로 싸우고 행동해야 할 때도 있다. 당장에는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활동이 절실하지만 모듬회나 토론회 등도 많이 하고 있다. 아래로부터 문화예술인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더 나아가 정책으로 까지 가려 한다. 운영이 안정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사회에서도 분과가 만들어졌다. 고유사업팀과 대외사업팀으로 나눠 각자 최대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류 : 서교랑 거의 비슷한 흐름이다.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홍 :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서 홍우주가 정책을 낸다면 가장 관심 있는 정책은 뭔가?
류 : 비유를 들어보자. 노부모가 있고 자식이 8명 있는 10인 가족이 있다. 7명의 동생이 물건을 만들면 장남이 물건을 시장에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재료를 사다가 집에 들고 와서 가내수공업으로 내다 판다. 현금은 계속 첫째가 쥐고 있고 나머지 가족들은 생산에 필요한 활동 외에 경제적으로 주어지는 권한이 없다. 경제활동은 같이 했는데 돈은 모두에게 돌지 않는다. 이러면 한 가정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물가체계가 둘로 나뉘어 이분화된다. 첫째가 가지고 있는 돈은 원래 나머지 동생들과 함께 나눠가져야 할 몫이다. 첫째를 대기업이라고 한다면 기업이 딱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받고 있는 동생들의 물건을 잉여 자본으로 사는 행위는 한국 사람이 물가 체계가 다른 베트남의 땅을 사는 것처럼 불공정한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젠트라피케이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막으려면 부모가 첫째에게 돈을 거둬 첫째 대신 땅을 사야 한다.  sf 같은 이야기지만 서울시가 서울시 땅의 1/5만 가지고 있어도 부동산은 완전하게 제어가  될 것이라고 본다.
홍 : 문화예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부동산, 젠트리피케이션 뭐라고 하든 주제가 너무 커진다. 정책제안을 하려면 적절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뭐가 있을까?
류 :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회의만 많고 결론이 안 나는 게 건물주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 대신 건물 살 수 있는 사람이라도 나와야 한다. 이게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 그런데 건물을 사려는 사람은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에서라도 이런 역할을 해주기 바라는 거다. 이 역할이 없으면 결론이 날 수가 없다. 건물주는 가격 올려 놓고 생태계가 망가져도 크게 신경 안 쓴다. 일부 거금을 대출받고 건물 사들인 사람이야 타격이 있겠으나 대체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홍 : 6/7일 포럼 꼭 와 달라. < 공공사업이 홍대앞 문화예술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토론회 한다. 지금 벌어지는 공공사업을 보면 사업계획에는 문화예술이 들어가는데 기획은 관에서 다하고 대부분 형식적인 간담회 한 번 하고 사업이 진행된다. 이런 방식의 공공사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그 때 와서 방금 하신 이야기들 많이 해주시면 좋을 거 같다. 이 이야기들 모아서 구청에 전달할거고 후속 토론회도 계속 이어갈거다. 마포구랑 서울시도 부르겠다. 참가 거부하면 그 사실도 알리겠다. 감시와 민원 없이는 공무원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한 편으론 궁금하기도 하다. 홍우주가 여론 형성하는 역할 해야 한다. 수 많은 자리를 통해 바닥부터 의견 모아서 행정에 전달하고. 그런데 그 과정이 항상 매끄럽고 세련될 수 만은 없다. 기자회견도 하고, 1인시위도 하고 강하게 행동해야 할 때도 있다. 홍우주 시작 자체가 그런 행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 아닌가. 조합원들이 함께 참여해줄지 고민이 된다.
류 : 이런 활동이 많아지면 조합원들도 홍우주에 공감하고 인정하고 함께 행동할 거다.
홍 : 조합원들에게 메일을 많이 보내고 있다. 조합원과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카톡방도 있다. 카톡 많으면 스트레스 받지 않나 신경도 쓴다.
류 : 카톡은 다 보고 있고 뉴스레터도 봤다. 카톡같은 경우 알람 꺼놔서 괜찮다. 그리고 홍우주 조합원 방은 잡담성 카톡방이 아니라 필요한 내용 위주로 올라오니까 다 읽는데 크게 어렵지 않다.
홍 : 5월 뉴스레터에 보내려면 인터뷰를 좀 더 빨리했어야 하는데 뉴스레터 골격을 만드는 중인데다 5월에 일정도 많아서 조금 늦어졌다. 마지막으로 홍우주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나?
류 : 뭘 도와드릴까요? (웃음) 이번 주 토요일에 개인작업실 오픈파티 하는데 오면 대환영이다.
홍 : 그 소식 공유하겠다. 아직까지는 조합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거다.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다.
류 : 존재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된다.